얼마 전에 읽은 안토니오 신부님의 저서 ‘치유의 순간’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어 나누어 보려고 한다.
참고로 ‘치유의 순간’은 가톨릭 영성 서적으로, 인도 출신 V. 안토니오 사지 신부님의 침묵 치유피정 강론 내용을 엮어 만든 책이다. 얼마 전 성당에 방문하신 바오로딸 수녀님들의 권유로 구매하게 되었다.
“나는 왜 이럴까”
어릴 때부터 교육받아왔던 방식 때문인지, 나는 늘 내가 생각하고 기대하는 나의 모습에 내가 부응하지 못하는 경우 많이 좌절하고 괴로워한다. 나는 평소에 감정선이 자주 바뀌는 편인데, 특히나 한달에 한 번씩 마법이 걸릴 때쯤이 되면 그 감정기복은 더더욱 심해진다. 어쩔 수 없는 호르몬의 노예이기에, 그냥 지나갈 수 있었던 것도 이 때에는 더더욱 내 기분을 안좋게 한다. 기분이 안좋아지는 대부분의 이유는 보통 외부의 자극이 아닌, 항상 ‘내 기대에 못 미치는 나 자신’이다. 계획을 세울 땐 뭐든 다 할 수 있는 나라고 자부하며 그 모든 것을 이루는 나를 상상했는데, 현실의 내가 그 모습보다 훨씬 못 미치고 있는 것 같을 때, 나는 좌절하고, 자책하고,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게 되거나 곧잘 상처를 주는 행동을 한다.
자기계발, 심리, 영성, 마음공부에 관심이 있는 이유도 이러한 괴로움 때문인 것 같다. 편안한 마음으로, 목표를 이루며 건강하게 살고 싶은데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이 방해가 되는 것 같으니 내 머릿속 나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정보를 계속해서 찾는 것이다.
치유의 순간🪷
이러한 나에게 ‘치유의 순간’을 읽다가 크게 와 닿은 말이 있다. 바로 우리의 마음은 ‘밀과 가라지가 같이 자라는 밭’이라는 말이다. 참고로 ‘가라지’라는 풀은 우리말로 ‘독보리’ 라고도 불리는데, 이 풀은 밀밭에 섞여서 자라며 독성을 가지고 있어 가축이나 사람이 먹으면 중독증상을 일으키는 풀이라고 한다. 만약 내가 밀밭을 가꾸는 농부인데, 이 고약한 풀인 가라지가 아무리 없애려 해도 없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밀밭 속에서 함께 자라난다고 생각해보라.
그러나 이 책에서 안토니오 신부님은 우리의 마음이 그러해도 괜찮고, 오히려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불완전합니다. 저 역시 밀과 가라지가 같이 자라는 마음 밭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저를 받아들이려면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있는 밭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밀과 함께 있는 가라지를 받아들이는 좋은 방법은 우리의 자세를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가라지가 없는 밭을 만들 수 있을까 하면서 자신과 싸웁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 시야는 너무 좁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가라지를 뿌리도록 허락했습니까? 누가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고 합니까? 그것은 오로지 하느님께만 속한 일입니다. 그분께 속한 것을 우리가 가져오려고 하지 마십시오. 대신 더 크고 넓은 마음으로 그 밭을 바라보십시오.”
우리의 마음에 좋은 것과 나쁜것이 함께 있는 것, 우리의 행동에, 우리의 모습에 좋음과 나쁨이 공존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날 때부터 인간은 그러한 본성을 가지고 있고,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으로, 그 자체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밀도, 가라지도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인데, 왜 나는 어떤 것은 밀이라고 하고, 어떤것은 가라지라고 하며, 가라지는 뽑아서 던져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불완전하고 악한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말이다.
잡초가 자랄 수 있는 들판
“우리는 어떻게 하면 가라지가 없는 밭을 만들 수 있을까 하면서 자신과 싸웁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 시야는 너무 좁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가라지를 뿌리도록 허락했습니까? 누가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고 합니까? 그것은 오로지 하느님께만 속한 일입니다.”
나의 사고방식과 감정의 반응 패턴은 내가 자라오면서 경험한 수많은 일들로 인해 내 안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나의 이러한 모습은 내가 의도적으로 내 안에 집어넣거나, 뺀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삶을 따라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금의 내가 되어 있는 것이다. 어떠한 나던지 간에, 나의 마음에는 밀과 가라지가 있다. 만약 나의 삶이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삶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을 내 마음대로 판단하는 것은 마치 하느님의 계획을 판단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께 의탁하는 삶은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 삶이 된다.
나 자신에게 밀과 가라지가 있듯,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마음에도 밀이 있고 가라지가 있다. 그러나 나는 어떤 이들의 밀만을 봤을 것이고, 어던 이들에게서는 가라지만을 봤을 것이다. 그러한 모습을 가지고 우리는 그들을 불완전하거나, 악하거나 선하다고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내 안의 밀이 내 전부가 아니고 내 안의 가라지가 나의 전부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나아가며
하느님께서는 내 마음에 밀도 있고, 가라지도 있음을 아신다. 그리고 그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시며 받아들여 주신다. 내가 하는 사랑이 하느님의 사랑과 닮아 있으려면 나 또한 나 자신과 다른 이의 밀과 가라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밀밭만 있는 마음, 밀밭만 있는 인생만을 보여주려고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불완전하며 나쁘다고 교육받고, 또 무의식중에 계속해서 그런 메세지에 노출되는 우리에게 정말 좋은 비유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은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밭’이라는 것.
밀도 있고, 가라지도 있는 나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이러한 나를 조건없이 사랑해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계속해서 묵상하려고 한다. 내 안의 가라지를 하나 하나 바라보며 나를 탓하고 나에게 화를 내기 보다는, 이러한 나임에도 불구하고 전능하시고 존귀하신 분께 넘치도록 사랑받는다는 기쁨에 더 집중해보고자 한다.